예고된 연금개혁 실패, 진정한 개혁을 위한 비전은?

예고된 연금개혁 실패, 무엇이 문제였나?

*예고된 연금개혁 실패, 진정한 개혁을 위한 비전은?


2025년 3월 20일,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하지만 환영의 목소리보다는 비판과 실망이 압도적이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시민사회·노동계에서도 각기 다른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번 연금개혁은 개혁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하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진정한 개혁은커녕, 기초설계부터 체계적인 혼선으로 점철됐다는 지적이다.

이번 글에서는 예고된 실패였던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구조적 문제점과 방향성의 오류를 중심으로 살펴보며, 제대로 된 연금개혁이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정부와 정치권의 책임: 연금개혁의 비전 결여

연금개혁은 단기적 정치성과가 아닌, 장기적 안목과 사회적 책임이 필요한 중대 과제다. 그러나 이번 개혁 논의 전반은 ‘비전 부재’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윤석열 정부는 연금개혁을 핵심 국정과제로 내세웠고, 대선 공약에서도 '전 부처 연금을 포괄하는 완성형 연금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정책 추진 과정에서는 그 초심이 보이지 않았다.

개혁을 책임져야 할 정부와 국회는 갈피를 잡지 못했고, 연금개혁특별위원회는 3차례나 재구성되며 오락가락한 행보를 보였다. ‘개혁의 주체’는 끝내 불분명했고, 정부부처 간 책임 분담도 명확하지 않았다. 이러한 혼란은 결국 “형식만 개혁”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국민연금 개정안의 한계와 왜곡된 기조

보험료 인상 중심의 재정안정화 선행

통과된 개정안의 핵심은 2026년부터 매년 보험료율을 0.5%씩 올려 2033년에 13%까지 도달하며, 소득대체율을 현행 40%에서 43%로 소폭 올리는 방식이다. 겉으로는 ‘더 내고 더 받는’ 상생 개혁으로 포장되었으나,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상은 보험료 부담 전가에 집중되어 있다.

소득대체율 3% 인상은 40년 가입 기준으로, 연차별로는 연 0.075% 상승에 불과하다. 오히려 장기적으로 근속하는 청년들에게 더 유리한 구조며, 중장년층은 큰 혜택을 받지 못하는 구조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청년 독박론’을 앞세워 개혁 자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노후소득보장보다 제도 보전이 우선

진정한 연금개혁은 노후 빈곤 문제 해결과 사람의 안전을 우선 목표로 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연금개혁 논의의 중심은 ‘재정 건전성’에만 맞춰졌다. 재정안정화는 중요하지만, 제도의 목적이 ‘공공의 삶을 안전하게 지탱하는 것’이라는 점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과 노인자살률이 가장 높다. 그러나 연금개혁에서는 이 심각한 현실을 외면한 채, 제도의 수지 균형 맞추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이는 제도의 본 목적을 벗어나 ‘안전한 사람’이 아니라 ‘안정된 장부’를 우선시한 왜곡된 개혁이라 할 수 있다.

*예고된 연금개혁 실패, 진정한 개혁을 위한 비전은?



기초연금·퇴직연금의 구조개혁이 우선이다

기초연금: 정체성 없는 반쪽 제도

현재의 기초연금은 보장성과 공정성 측면 모두에서 한계를 드러낸다. 제도 명칭은 '기초연금'이나, 실제로는 명확한 기능이 고장나 있다. 보편적 연금도 아니고, 최소한의 노후소득 보장도 이행하지 못한다.

공무원과 군인 등 특수직역 수급자는 이유 없이 배제되고 있으며, 국민연금과의 관계에서는 오히려 연계 감액 등으로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기초연금을 명확한 '노인수당'으로 설정하되, 적용 대상과 급여 수준을 보편성과 적절성의 원칙 위에 재설계해야 한다.

퇴직연금: 연금으로 기능 못해

퇴직연금은 노후소득보장보다는 ‘일시금 수령’에 집중되어 있어, 실제 연금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현행 구조는 고용주와 근로자의 선택에 맡겨둔 채, 대다수가 수령 즉시 사용해버리고 끝나는 구조다.

이를 해결하려면 연금형 수령을 의무화하거나, 공적기금관리기관을 설립하여 기금의 안정성과 수익률을 확보하는 관리를 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퇴직연금과 국민연금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이중 설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형평성 문제: 직역 간 차별 해소 필요

특수직역연금과 국민연금 수급 구조 통일

연금개혁이 공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려면, 무엇보다 직역 간 형평성을 확보해야 한다. 현재는 공무원, 군인, 사학기관 종사자 등이 별도의 연금제도를 운영하며, 일반 국민들과 다른 수준의 급여와 혜택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귀족연금’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이에 대한 해결책은 '사회보험+퇴직연금'의 이원화 모델이다. 사회보험 부분은 직역 차이를 없애고, 퇴직연금은 직무 특수성을 반영해 차등 적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형평성과 특수성을 모두 살릴 수 있고, 국민적 갈등도 줄일 수 있다.


지속가능한 공적연금을 위한 구조개혁 로드맵

정책교환(POLICY TRADE-OFF) 전략이 필요하다

공적연금은 사회보험이자 정책수단이다. 따라서 공적연금 설계는 교육정책, 가족정책, 노동정책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야 한다. 선진국들은 이미 공적 자금으로 다음 세대의 보험료를 보조하며 제도 지속성을 확보하고 있다.

  • 육아·출산·실업 기간의 보험료 대납
  • 소득 보장 구간 확대
  • 기초연금의 확대 및 보완

이러한 정책적 교환 전략 없이는 단순 보험료 인상만으로는 구조개혁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다.


진정한 개혁을 위한 정치의 책임과 역할

공적연금의 목적은 단순한 숫자놀음이 아니다. 그 핵심에는 ‘국민의 삶과 안전’이 있다. 그러나 이번 개정안은 제도적 안정성만 강조하며, 국민 개개인의 행복과 안전을 뒷전에 두었다.

현 정부와 여·야 정당은 국민과 한 약속을 기억해야 한다. 2015년 공무원연금 개혁 당시 합의했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 수준은 아직 지켜지지 않고 있다. 이번에도 국민참여 공론단의 다수의견은 이를 지지했지만, 정치권은 이를 외면했다.

연금개혁은 정당이 소관하는 정치적 약속이자 책임이다. 각 정당은 자신의 연금개혁 비전과 대안을 명확히 제시하고, 국민과 숙의·협상을 해야 한다. 선택받은 결과에는 책임이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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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실패로부터의 교훈, 제대로 된 개혁을 향하여

국민연금 개혁은 단발성이 아닌, 세대와 체제를 아우르는 거대한 전환이다. 이번 개혁은 출발부터 실패가 예고되었으며, 방향성 역시 잘못 설정되었다. 그러나 이 실패가 진짜 개혁을 위한 교훈이 될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다.

  • 노후소득보장을 핵심 가치로 삼아야 하며
  • 사람 우선의 철학을 제도 설계에 반영해야 하며
  • 형평성과 공정성을 동등하게 고려해야 하며
  • 정치권은 실천 가능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연금개혁안들이 제시되고, 그에 따라 정당과 정부가 약속을 지키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보고 싶다. 이것이 국민이 바라는 진짜 ‘연금개혁’이다.